군대에 간 그는 부쩍 통화도 자주 오래했지만,
재밌는 게 너무 많아 잠 잘 시간도 없었던 스물한살의 나는 종종 외면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제대를 했고 춘천의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만나서 밥이나 먹자 했지만, 약속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다.
그해, 2003년 9월 11일.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만취한 운전자 차에 치어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내가 처음 춘천에 발을 들여 놓아 넋을 놓고 있을 때
나를 일으킨 건 그 친구가 차려 준 밥상이었는데,
그가 여러가지로 겉돌며 계속해서 회의감이 들 때,
나는 그에게 따뜻한 밥 한 번 사 주질 못했다.
5월과 9월. 그 녀석의 생일과 기일이 다가 올 때즈음마다 느끼는 심한 괴로움.
아직도 난 그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혹은 어디에 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알기가 두렵기도 하다.
아직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한 건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아직도 못내 마음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영진.
어느날 새벽 함께 국어 사전에서 서로의 이름을 찾았었지.
넌 영달이랑 동의어라고 해서 졸지에 영달이 됐지.
내 이름은 큰소리를 내어 울부짖음이라는 뜻이었지.
난 참,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네.
소주는 요즘 1천원이 넘은 것 같더라.
알고는 있는지...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osted by Q-H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