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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2 그리운 그의 얼굴. by Q-Ho (1)

그리운 그의 얼굴.


최근 몇 년 동안 어린이날이 되면 풀이 죽어 있었다.
1981년 5월 6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다.
전교 '수석'으로 들어 온 녀석은 똘똘하기로는 그지 없었고 품성도 훌륭하였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컨닝은 중학교 1학년 때 모의고사 기술 마지막 문제였는데, 맨 앞 줄에 있던 그 녀석이 답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었다.

같은 독서실에 다니면서 새벽까지 놀았고,
시장에 문닫은 과일 가게에서 몰래 과일을 뽀려 먹은 것도,
700원짜리 진로 소주와 300원짜리 새우깡을 놓고 처음으로 일탈음주를 한 것도 그와 함께 였다.
1996년 내 생일에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이 휴가 가신 그 집에서  술을 먹다, 
나중에 병뚜껑이 걸려 우리는 모두 그 어머니께 호출 당한 적도 있엇다.

우리는 같이 고등학교를 춘천으로 가기로 약속했고,
그 친구는 1등답게 1등학교였던 춘천고로,
나는 2등학교였던 사대부고로 갔다.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와 도시에서 하숙을 하였고,
그는 내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방의 도시에서 부대끼며 서러워하던 1997년 3월.
그는 또 한 번 아무도 없는 자기네 집으로 나를 불러 내어 이것저것 꺼내고
또 요리를 하여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주었다.
메마른 하숙집 밥을 두어 달 가까이 먹고난 후에 본 집의 '밥상' 앞에 난 눈물까지 글썽였다.

싱그러운 청춘인지라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버티겠다는 각오 비슷한 것들을 얘기했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어떻게든 고등학교 생활을 살아보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들을 했다.

그후로 학교에 재미도 붙이고 친구들도 생긴 나는 자연스레 그와 뜨문뜨문 만났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에서 전화 통화 정도로 서로의 안부만 묻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통화에서 '공부'얘기는 없어졌고 그 자리는 '당구'가 차지했다.
학교 친구들에 정을 붙였지만 학교와 대입에는 멀어진 것 같았다.

졸업 후 나는 서울로 상경했고 그는 춘천에 남았다.
간간이 같은과에 간 고교 동창들에게 들리는 소리로는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

종종 통화를 하곤 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지는 못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는 훌쩍 군대를 가버렸다. 5월의 스승의 날 즈음... 
눈이 와서 부대에서 눈 치웠다는 전화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

군대에 간 그는 부쩍 통화도 자주 오래했지만,

재밌는 게 너무 많아 잠 잘 시간도 없었던 스물한살의 나는 종종 외면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제대를 했고 춘천의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만나서 밥이나 먹자 했지만, 약속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다.


그해, 2003년 9월 11일.

오토바이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만취한 운전자 차에 치어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내가 처음 춘천에 발을 들여 놓아 넋을 놓고 있을 때

나를 일으킨 건 그 친구가 차려 준 밥상이었는데,

그가 여러가지로 겉돌며 계속해서 회의감이 들 때,

나는 그에게 따뜻한 밥 한 번 사 주질 못했다.


5월과 9월. 그 녀석의 생일과 기일이 다가 올 때즈음마다 느끼는 심한 괴로움.

아직도 난 그가 어디에 묻혀있는지, 혹은 어디에 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알기가 두렵기도 하다.

아직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한 건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아직도 못내 마음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영진.

어느날 새벽 함께 국어 사전에서 서로의  이름을 찾았었지.

넌 영달이랑 동의어라고 해서 졸지에 영달이 됐지.

내 이름은 큰소리를 내어 울부짖음이라는 뜻이었지.

난 참,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네. 

소주는 요즘 1천원이 넘은 것 같더라.

알고는 있는지...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알 수 없음.jpg

Posted by Q-Ho

2009/05/12 01:23 2009/05/12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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