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Q-Ho
1.
모르겠는 모국어 중에 '조리기구'와 관련된 것이 많다. 대충 그런 것을 지시하려고 할 때에는 사전식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야할 때가 많다. '그거 있잖아... 국수 삶고 물에 씻으려고... 그 스뎅이 구멍 뽕뽕 뚫린 거...' 머릿속에 영어 단어는 떠오른다. 콜랜더colander...라고 부르고 싶지만 종종 그렇게 불렀다간 재수없을 까봐 늘 머리에만 뱅뱅 돌거나 혹은 혼자서 콜랜더가 어디갔지? 이 정도로 중얼 거린다.
그런 애가 또 하나 있다. 터너turner. 서술적 설명을 할 때 어김없이 계란 완숙으로 만들기 위해서 계란 뒤집을 때 쓰는 그거. 이건 혼자 이름도 지어줬었다. 콜랜더보다는 훨씬 사용 빈도가 많았기 때문에. 내가 상상력 결핍으로 지은 이름은 고작 '넙적수저'였다.
2.
연구실에서 한참을 모니터만 보다 하늘을 보니 잔뜩 찌푸려있다. 아.. 밤에 마감 뉴스에서 오늘은 비가 내려 폭염 특보가 해제될 거라고 했지. 뉴스를 보니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했고, 또 체포했단다.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본적은 없지만, 내 지극히 협소한 사회 경험을 통틀어 볼 때 그 사람이 도피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것은 빤한데 체포까지 하다니... 사실 그 사람에게는 군사독재 시절에 '해외 도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렇게 했구나 하며 웃어줬다. 몇 달 사이에 그 시절로 돌아간 게 분명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력'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체포를 해 버리는 계산이 나오는 거겠지.
이제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거품을 물지도 않는다. 가끔 거품 물 일이 있다면 얼굴 면식만 있는 사람이 청년 자원활동가로 이명박 찍으라고 다니면서 대선일을 도왔다는 것, 그 사람은 일절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이 '정치란 다 그렇게 더러운 건 가봐요'라고 얘기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 그래서 웃으면서 '그렇게 더러운 거 모르셨나봐요? 제 눈에는 적어도 진짜 드러운 건 보이던데 잘 안보이셨나봐요. 근데 실수 할 수 있어요. 허나 적어도 사람이 챙피한 건 아셔야죠... 어쩜 이렇게 당당하게 고개 빳빳하게 들고 다니세요? 그 용기는 참 가상하네요.'라면서 농담하듯 꽂아 버린 비수 정도가 거품문 일의 전부일 것이다.
3.
찌뿌려진 하늘을 보며 우산 없다는 핑계로 지각한 주제에 정시 퇴근을 해서는 동네 마트에 들렀다. 갑자기 세상이 황량해짐을 느끼고 나서는 왠만해서는 집에서 해 먹는 게 좋다. 그냥 간단히 샐러드와 두부부침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2002년이었다. 어느 가을날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집에서 kbs1의 6시 내고향과 같은 프로그램에 시선이 꽂혔다. 80을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속 깊은 곳에서 둘이서 오봇이 살고 있는 모습. 할머니가 힘 없이 감자를 강판에 간다. 하염없이 간다. 매가리가 없는데 계속 간다. 결국 감자는 갈린다. 그리고는 손잡이가 위로 나 있는, 이틀 쓰면 코팅이 언제 있었을까 하는 그 이름없는 까만 후라이팬에 간 감자를 올려 놓고 전을 만든다. 그리고 김치와 장아찌 그리고 국, 감자전과 밥이 전부인 저녁 식사를 노부부가 해 먹고는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잠이 들었다. '숭고한 감자전'이었다. 당장 나가서 강판과 감자를 사서 집에서 똑같이 해먹었다. 처음하는 감자전이었지만 먹을만 했다. 감자의 미덕이란... 아무렇게나 해도 맛이 기본은 나온다는 거 아닐까.
퇴근할 무렵 사람들에게 '전 오늘 감자전 해 먹을 거에요'라며 연구실 문을 나섰다. 얼마전 논문 프로포잘로 처참히 깨진 친구 - 그 며칠 후 만난 자리에서 나마저 그 프로포잘에 혹독한 비난을 해버렸다.ㅠ.ㅠ-에게 며칠전 한 일로 미안한 마음에 우리집에 와서 감자전 해 먹는 건 어떠냐며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대충 메뉴를 정했다. 애호박으로 계란 묻혀서 호박전도 만들고 송이 버섯으로 송이전도 만들자. 북어국 하나 끓이고 매콤한 걸로는 촛불시위 최대 히트상품 삼양라면의 간짬뽕을 한 번 끓여보자. 어제 남은 야채로 샐러드도 만들어야지.. 올리브도 좀 넣고 훼타 치즈도 넣으면 먹을만 할 거야... 김치를 사려고 했는데 마트 앞에 작은 반찬 가게가 생겨 가봤다. 보아하니 아주머니 4명이서 함께 가게를 차린 것 같고 요 며칠 사이에 개업한 거 같았다. 킬로당 파는 김치를 500그램만 해서 4천원에 사왔다.
집에 와 보니 부침 가루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계란 묻히기 전에 밀가루라도 묻히긴 해야하는데... 집에 비슷한 걸 생각해보니... aunt jemima 의 팬케익 가루가 있다. 해봤다. 맛있다. 친구가 왔다. 전 부치고 국 끓이느냐 정신 없어 친구에게는 감자 깎고 강판에 가는 일을 부탁했다. 전을 부치는 그 순간은 전에만 집중하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타기도 쉽고 작게작게 여러개가 모여있으니 뒤집는 걸 깜빡해, 탈 수도 있다. 후라이팬과 한 판 뜰 전사의 모습이다. 그렇게 20분 정도 북작북작 준비하고 나니 근사한 밥상이 차려졌다. 밥을 먹고는 얼마전 티벳에 다녀온 정수가 가져다준 레몬 그라스 차를 후식으로 들기도 했다. 그 때 kbs 에서 나왔던 '숭고한 감자전'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위엄이 쫌 있는 밥상'이 됐다. 감자전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 위엄은 얼마나 높아졌던가.
4.
인터넷을 하다가 드디어 그 넙적 수저의 이름을 찾았다. 표준어로 '뒤집개'라고 한다. 이렇게 허망한게 또 있을까... 내친김에 콜랜더도 찾아봤다. '여과기'란다. 다행이 '뒤집개'만큼 허망하지는 않았다. 비빔국수나 냉면할 때 쓰는 그 기구에 '여과기'라는 이름이 뭔가 어색하게 붙어서이다. 그냥 혼자서는 '콜랜더'로 쓰자고 마음을 굳혔다. 다른 곳에서는 여과기라고 하고.
5.
나에게 '숭고한 감자전'을 일깨워준 kbs.
누군가는 오늘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어디선가 촛불을 들 것이다.
난 더이상 촛불을 들지는 못하지만, 친구를 초대하여 그만큼 숭고하지는 못하지만 소박하되 위엄있는 삶을 꿈꾸며 그것과 가장 근접한 '감자전'을 만들기 위해 '뒤집개'를 들었다.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이 뒤집개를 들 수 있는 것. 오늘 내게는 그게 중요했다.
2008년 8월 12일. 밤 11시 42분.
스위스빌리지 102호에서.

